1974 / 대만
불교에서 화엄을 특히 좋아하였고,
노자·장자에 정통하였으며,
논어와 주역을 완상(玩賞)하였다.
유·불·도를 망라하는 방대한 지식과
다양한 사상체계를 무리 없이 융회시켰다.
선생은 ‘정’을 소외하고 인간문제를 다루는 일은
죽은 송장을 놓고 대화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세상의 제도와 법도 그리고 도의와 예절 등은 .
모두 ‘정’을 잘 소통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1987년 제5공화국의 4·13호헌조치 때
고려대학교 교수들의 호헌 반대 서명을 주도하는 등
사회비판을 실천하는 선비였다.
중천 선생님께서는 현직에서 퇴임하신 후 십 여년 후에 대안령에 이 시비를 세우셨다. 누가 왜 이 시를 쓰고 시비를 세웠는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시비를 세우셨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필자가 뵈었을 때 아무도 이 시비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 않는다고 좋아 하신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 출처 : 철학토크쇼 ‘중천’에서 )
1974 /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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